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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심포닉시리즈Review2
- 작성자*
- 작성일2005-02-01
- 조회수5811
두 번째 시리즈는 음악과 시의 합일을 작품세계의 핵심으로 삼았던 시대의 풍운아,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으로 다채롭게 꾸며졌다. 오페라의 개혁을 통해 발할라 궁전에 맞먹는 음악적 신전을 쌓은 바그너는 국내에서 아직은 연주가 희소한 편이나 몇몇 골수 마니아를 거느리고 있어 그 잠재력만큼은 높은 인물이다. 톤디히퉁 두 번째 콘서트 날은 11월 초, 갑자기 추워져 겨울을 방불케 했지만 리스트 때 보다 관객도 많았고 공연 열기도 높았다.
돌연 연주자의 사정으로 곡의 순서가 바뀌었다는 안내방송이 흘렀다. 첫 곡으로 연주된 ‘로엥그린’ 3막 전주곡은 앙코르로 자주 연주되는 곡으로 금관섹션이 얼마나 잘 정비되어 있는지 알 수 있는 척도가 되는 곡이기도 하다. 그러나 날씨 탓이었을까, 부천 필의 연주는 그들의 브랜드에 걸맞지 않게 그 빛이 바래져 있었고 관악주자들의 컨디션이 결코 좋아 보이지 않았다. 시작부터 청중들은 불안한 마음이었고 무대를 당당하게 걸어 나온 사무엘 윤이 분위기를 반전시켜주길 고대하는 심정이었다. 그의 노래는 당당하고 카리스마가 넘쳤는데, 동양인이 서양 신화의 주신主神인 보탄을 부르는 것은 확실히 묘한 쾌감을 느끼게 했다. 딸과의 작별을 선언하고 거대한 클라이맥스를 거쳐 불의 신 로게를 부르자 콘서트홀 안에는 마법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훌륭한 가창이었지만 약간에 투정을 보태자면 그의 목소리는 젊음이 넘쳐 꺼져가는 황혼을 바라보는 보탄의 정서에는 너무 강했다. 그가 캐릭터에 맞는 목소리 연기를 좀 더 연구하고 다듬는다면 걸출한 바그네리안 바리톤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부천 필은 ‘발퀴레’에서 여전히 자신 없는 연주를 들려주어 안타까웠으나 1부 끝 곡으로 연주된 ‘성 금요일의 음악’에서 어느 정도 전열을 가다듬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전반적으로 1부에서 오케스트라는 열기 혹은 생기가 부족하였고 바그너 사운드의 핵심인 금관을 너무 억제하여 답답한 느낌을 주었다.
원래 연주회 오프닝을 장식하기로 예정되었던 ‘탄호이저’ 서곡이 2부의 문을 열었다. 순례자의 경건한 합창과 비너스의 에로틱한 유혹의 양극성이 돋보이는 이 곡은 매우 근사하게 들리지만 현악기의 가혹한 노동을 요구하기로 유명하다. 비록 첫 음에서 혼 파트의 실수가 있었지만 부천 필은 이 곡부터 제 컨디션을 찾기 시작했고, 특히 비너스 장면에서 순례자 모드로 전환되는 부분과 마지막 마무리가 탁월했다.
그리고 이날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이 연주회장을 관능의 골짜기로 변모시켰다. 첼로의 갈구하는 패시지에서 오보에의 동경하는 듯한 반음계로 이어지는 그 유명한 ‘트리스탄 화음’ 장면부터 부천 필은 마약에 취한 듯 농염하고 몽환적인 톤을 구사해냈다. 고전적인 종지가 없는, 진실로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감각적인 화음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지고 청중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두 연인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이 커다랗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부천 필의 잘 조련된 현은 마치 콘서트 헤보우 오케스트라의 소노리티처럼 진하고 풍부한 레가토를 구사하였고 숨조차 크게 쉴 수 없는 고도의 긴장감으로 몰아갔다. 신들의 겉멋을 제거한 진실로 인간의 드라마라 할 수 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작곡한 바그너는 정말로 대단한 악마임에 틀림없다! ‘사랑의 죽음’의 거대한 클라이맥스는 황홀한 오르가슴과 다를 바 없었고 마지막에 잦아드는 조명은 독특한 효과를 발휘했다. 바로 터져 나오는 박수 때문에 너무 일찍 현실로 돌아온 것 같아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런 열광적인 반응 또한 연주가 좋아야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이라는 임헌정의 유머스런 멘트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그들은 앙코르로 ‘로엥그린’ 3막 전주곡을 다시 연주하였다. 첫 곡으로 연주할 때보다 훨씬 박력이 넘쳤으며 에너지가 충만하였다.
글 : 김문경(『구스타프 말러』 저자 / 음악 칼럼니스트)
돌연 연주자의 사정으로 곡의 순서가 바뀌었다는 안내방송이 흘렀다. 첫 곡으로 연주된 ‘로엥그린’ 3막 전주곡은 앙코르로 자주 연주되는 곡으로 금관섹션이 얼마나 잘 정비되어 있는지 알 수 있는 척도가 되는 곡이기도 하다. 그러나 날씨 탓이었을까, 부천 필의 연주는 그들의 브랜드에 걸맞지 않게 그 빛이 바래져 있었고 관악주자들의 컨디션이 결코 좋아 보이지 않았다. 시작부터 청중들은 불안한 마음이었고 무대를 당당하게 걸어 나온 사무엘 윤이 분위기를 반전시켜주길 고대하는 심정이었다. 그의 노래는 당당하고 카리스마가 넘쳤는데, 동양인이 서양 신화의 주신主神인 보탄을 부르는 것은 확실히 묘한 쾌감을 느끼게 했다. 딸과의 작별을 선언하고 거대한 클라이맥스를 거쳐 불의 신 로게를 부르자 콘서트홀 안에는 마법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훌륭한 가창이었지만 약간에 투정을 보태자면 그의 목소리는 젊음이 넘쳐 꺼져가는 황혼을 바라보는 보탄의 정서에는 너무 강했다. 그가 캐릭터에 맞는 목소리 연기를 좀 더 연구하고 다듬는다면 걸출한 바그네리안 바리톤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부천 필은 ‘발퀴레’에서 여전히 자신 없는 연주를 들려주어 안타까웠으나 1부 끝 곡으로 연주된 ‘성 금요일의 음악’에서 어느 정도 전열을 가다듬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전반적으로 1부에서 오케스트라는 열기 혹은 생기가 부족하였고 바그너 사운드의 핵심인 금관을 너무 억제하여 답답한 느낌을 주었다.
원래 연주회 오프닝을 장식하기로 예정되었던 ‘탄호이저’ 서곡이 2부의 문을 열었다. 순례자의 경건한 합창과 비너스의 에로틱한 유혹의 양극성이 돋보이는 이 곡은 매우 근사하게 들리지만 현악기의 가혹한 노동을 요구하기로 유명하다. 비록 첫 음에서 혼 파트의 실수가 있었지만 부천 필은 이 곡부터 제 컨디션을 찾기 시작했고, 특히 비너스 장면에서 순례자 모드로 전환되는 부분과 마지막 마무리가 탁월했다.
그리고 이날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이 연주회장을 관능의 골짜기로 변모시켰다. 첼로의 갈구하는 패시지에서 오보에의 동경하는 듯한 반음계로 이어지는 그 유명한 ‘트리스탄 화음’ 장면부터 부천 필은 마약에 취한 듯 농염하고 몽환적인 톤을 구사해냈다. 고전적인 종지가 없는, 진실로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감각적인 화음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지고 청중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두 연인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이 커다랗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부천 필의 잘 조련된 현은 마치 콘서트 헤보우 오케스트라의 소노리티처럼 진하고 풍부한 레가토를 구사하였고 숨조차 크게 쉴 수 없는 고도의 긴장감으로 몰아갔다. 신들의 겉멋을 제거한 진실로 인간의 드라마라 할 수 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작곡한 바그너는 정말로 대단한 악마임에 틀림없다! ‘사랑의 죽음’의 거대한 클라이맥스는 황홀한 오르가슴과 다를 바 없었고 마지막에 잦아드는 조명은 독특한 효과를 발휘했다. 바로 터져 나오는 박수 때문에 너무 일찍 현실로 돌아온 것 같아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런 열광적인 반응 또한 연주가 좋아야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이라는 임헌정의 유머스런 멘트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그들은 앙코르로 ‘로엥그린’ 3막 전주곡을 다시 연주하였다. 첫 곡으로 연주할 때보다 훨씬 박력이 넘쳤으며 에너지가 충만하였다.
글 : 김문경(『구스타프 말러』 저자 /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