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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심포닉시리즈Review 1

  • 작성자*
  • 작성일2005-02-01
  • 조회수5698
예술의전당 심포닉 시리즈 - Tondichtung 音詩  
 
review 예술의전당 심포닉 시리즈 - Tondichtung 音詩 
 
음악과 시의 아름답고도 진한 포옹 
 
음악과 시의 만남. 그것은 낭만 음악의 태동에 있어 핵심적인 모토이자 본질 중의 하나라 감히 말할 수 있다. 음악은 분명히 그 자체로 말할 수 있는 무언無言의 언어인데도 불구하고 낭만 시대의 작곡가들은 이를 실제의 언어와 결부시켜 그 능력을 무한으로 확장시키고자 했다. 아마도 낭만주의자들을 사로잡은 질풍노도, 환상과 정열, 이상과 동경이 그들로 하여금 음악 안에만 머물도록 허락하지는 않았으리라. 이 시기를 면밀히 살펴보건데 음악가들이 문학과 글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거꾸로 문필가가 음악에 몰두한 시기가 또 있었을까 싶다. 베를리오즈, 멘델스존, 슈만, 바그너는 바흐나 모차르트처럼 음악만 잘 하는 사람이 아닌, 글 또한 잘 썼던 만능 예술인이었고 E.T.A.호프만, 메리케, 괴테는 음악을 잘 한 문필가라 할 수 있다. 
예술의전당의 톤디히퉁Tondichtung, 音詩 시리즈는 이러한 종합예술의 경향에 있어 시작과 전성기 그리고 황혼을 다루는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그 중 첫 날 공연은 악마적 비르투오조, 리스트의 음악세계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낭만 시대에 괴테 『파우스트』의 포로가 되지 않은 작곡가는 드물었다고 할 정도로 이 작품은 최고의 가치를 지니며 음악계에 영향을 미쳤다. 슈베르트, 베를리오즈, 슈만, 멘델스존, 리스트, 구노, 보이토, 말러 모두 『파우스트』에 관련된 음악을 남겼고 리스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파우스트와 관련된 리스트의 걸작 ‘메피스토 왈츠’와 ‘파우스트 교향곡’이 모두 이날 한자리에서 연주되었다.  
 
서곡 격으로 연주된 ‘메피스토 왈츠’는 매우 색다르게 들렸는데 항상 피아노곡으로 듣던 것을 관현악으로 감상해서 그런지 더욱 이색적이었다. 피아노 저음으로 쿵쾅거리던 리듬은 이제 저현으로 바뀌었고 오른손으로 짚던 화음은 바이올린의 차가운 개방현으로 변해있었다. 관현악으로 듣는 메피스토 왈츠는 매우 인상적이었지만 그 악마성은 뒤에 연주될 메인 프로그램 곡과 비교하면 서막에 불과했다. 
 
75분에 달하는 대곡 ‘파우스트 교향곡’은 정말로 놀라왔다. ‘파우스트’ 악장 도입부의 그 현학적인 주제에서 트럼펫이 황금 광선을 쏘는 영웅적인 주제에 이르기까지 부천 필은 놀라운 집중력과 탁월한 조형미를 보여주었다. 말러 교향곡에서 기괴하고 악마적인 코드를 극대화하여 청중들의 머릿속을 마구 뒤흔들어 놓았던 임헌정의 지휘봉은 이제 ‘메피스토펠레스’ 악장에서 스스로 완전히 메피스토펠레스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연주는 곳곳에서 전설적인 번스타인/보스턴 교향악단의 1976년 녹음(DG)을 연상케 했는데 어쩌면 그보다 더 놀라운 마력이 담겨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우스트』 주제가 그토록 그로테스크하고 음침하게 몰핑morphing되는 중에도 변하지 않는 주제가 있으니 바로 영원한 여성상 ‘그레트헨’의 테마다. 그 숭고한 선율이 ‘신비의 합창’ 뒤에 테너 박현재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고 장엄한 끝마무리로 파우스트는 그렇게 구원 받았다. 이날처럼 리스트가 요란한 피아노 기교가 아닌 진지한 음악성으로 청중을 매혹시킨 적이 또 있었을까 싶다. 
 
 
글 : 김문경(『구스타프 말러』 저자 / 음악 칼럼니스트)